인간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한자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으면서도, 그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쥐가 미로를 외워야 하는 것만큼이나 고달프고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면이 많아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글은 음의 원리를 이해하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과학적인 글자인데 비하여서, 한자는 누가 창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창힐이라는 설이 있죠.), 이게 왜 여기서 이런 자형이 생기는지를 아무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고, 그냥 무지막지하게 외워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를 기조로 하여서 한자무용론이 확산되었던 바 있고, 최근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조금씩 한자유용론이 머리를 들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자에 대한 제대로 된 필요성을 느껴서 그런 것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한자에 대한 제대로 된 필요성은, 한자를 익히고 닦았을 때에, 그것이 나의 문화생활에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보탬이 된다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낄 때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는 한자로 된 용어의 필요성이 상당히 유용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영어로 설명하자면, 몇 개의 단어를 합성해야 겨우 그 뜻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커버하고자 말도 안 되는 약자를 만드느라 고심하여야 하는데 비하여서, 한자는 몇 개의 글자로 약칭을 만들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영어권의 경우보다 한자라는 표의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한자의 편리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개념들이 영어권에서 만들어져서, 한자권으로 넘어오는 현재의 세태 때문이기는 하겠죠. 하지만, 만일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여 봅시다. 한자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용어의 개념을 영어권에서 해석한다고 생각을 하여 보면,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수한 용어들이 생겨나거나, 한자의 음을 그대로 가차하여서 개념을 설명하는 일들이 발생하겠지요. 예를 들어, 한자의 "기(氣)"를 영어에서 그대로 qi라고 부르는 일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의 경우에 영어에서 나오는 개념을 한자화시키는 것을 시도라도 해 볼 수 있겠지만, 영어에서 "기"라는 개념을 그 뜻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신들의 용어로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인들이 수학을 잘 하는 이유는, 한자를 통하여 개념 정립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자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편익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은 한자를 멀리 하고 싫어 합니다. 그 이유는, 한자를 외운다는 과정이 너무나도 작위적인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한자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고 한다면 누구나 환영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얄팍한 기억법을 이용한 책들은 진정한 한자 해석법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한자의 해석은 한자를 만든 사람들이 왜 그 자를 그러한 자형을 통하여 보여왔는지를 규명함으로써 혹은 이해함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그러한 작업이 14년 간 진행되어 온 것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도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를 놓고서 상당한 갈등을 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한자를 해석하는 기존의 기법들-즉, 허신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잡한지를 새로운 해석법과 비교하여서 느껴 봄으로써 가능한 사실입니다. 한자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여야 하지, 부분부분 따로 해석하려 하는 자원 해석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즉, 하나의 스토리 텔링을 통하여서 여러 개의 한자를 일망타진하는 새로운 해석법이 나와야, 한자 학습의 유용성과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스토리 텔링은 단순히 기억법 수준의 얄팍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육 컨텐츠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자를 만든 시절의 사람들이 생각하였던 높은 수준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음으로 인하여서, 한자를 학습하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도덕성과 역사성을 함께 갖추어 나아가는 방식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 진행 중인 한자 연구입니다.
허신이 대학자인 이유는, 허신의 한자 연구가 기존의 한자 연구들을 집대성하면서도,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법을 통하여서 그것을 갈무리하였다는 점 때문이라고 본다면, 현재 한자의 연구는 허신이 몰랐던 갑골문을 더 활용하면서, 그 간의 해석법에서 짚지 못하였던 모든 사항들을 다 짚어서, 한자가 어떠한 체계로 구성되었는지를 가지고 놀듯이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한자해석에 있어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엎는 새로운 해석법입니다. 단순히 허신이 이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을 한다는 것은 이제 이 세대에 한자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론이 되지 못합니다. 한자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말이 한자만으로 언어생활을 연명하는 중국인들의 입에서, 그것도 최고 지도자급의 인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현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한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자 창제자들의 스토리 텔링이 어떠하였던가를 현대에 되살리는 길 이외에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